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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역사에 가려진 여성 영웅들을 기억하다

by infonara1968 2026. 5. 2.

1980 5,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는 무기를 든 시민군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두방송을 이끈 전옥주, 연대의 상징이 된 주먹밥 아짐들, 생명을 살린 간호사들과 여성 단체 '송백회'까지. 역사가 잊고 있던 5.18 여성 영웅들의 헌신과 주체적인 활약상을 되짚어봅니다.


들어가며: 5.18의 타자가 아닌 '주체'였던 여성들

1980 5,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이 된 광주민주화운동. 우리는 흔히 계엄군에 맞서 총을 든 남성 시민군을 떠올리지만, 그 역사의 이면에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항쟁의 불씨를 지피고 연대의 정신을 실천했던 수많은 여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존의 5.18 역사는 무장 투쟁을 중심으로 조명되면서, 여성들의 주체적인 활동은 단순히 밥을 짓거나 부상자를 돌보는 '보조적' 역할로 축소되거나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곤 했습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참혹한 국가 폭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광주의 여성 영웅들,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1.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광주의 입이 된 가두방송

통신과 언론이 철저히 통제되어 외부와 고립된 '공포의 도시' 광주. 시민들에게 계엄군의 만행을 알리고 항쟁의 정당성을 외친 것은 바로 여성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였습니다.

 

평범한 무용 강사였던 전옥주 씨는 우연히 목격한 시위대의 참상에 분노하여 직접 행동에 나섰으며, 동사무소에서 마이크와 앰프를 챙겨 트럭에 올라탄 그녀는 광주 시내를 돌며 계엄군의 비인간적인 학살 행위를 생생하게 폭로했습니다.

 

그녀의 절규에 가까운 방송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항쟁 이후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간첩'이라는 누명과 보안대에서 겪어야 했던 참혹한 성고문, 그리고 징역 15년이라는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항쟁의 마지막 날인 5 27일 새벽, 계엄군의 총탄이 빗발치던 전남도청.

 

그곳 방송실을 끝까지 지켰던 박영순, 이경희 씨의 애절한 목소리는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시민 여러분, 우릴 잊지 말아주십시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이 마지막 방송은 광주의 아픔을 상징하는 역사가 되어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2. "나눔도 용기다", 5.18 연대의 상징 '주먹밥'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이 바로 '주먹밥'입니다. 이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광주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와 나눔 정신을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징표였습니다.

 

당시 양동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오옥순, 박금옥 씨를 비롯한 상인들은 밥을 굶고 싸우는 시위대를 '내 자식'처럼 여겼으며, 이들은 십시일반 500, 1,000원씩 돈을 모아 쌀을 사고, 방앗간에서 밥을 쪄 와 소금으로만 간을 한 주먹밥을 만들었습니다.

 

"주먹밥을 만들다 걸리면 총 맞아 죽는다"는 흉흉한 소문 속에서도, 이들은 수레에 주먹밥과 물을 싣고 다니며 시민군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들의 나눔은 목숨을 건 용기였고, 항쟁을 이어나가게 한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3. 피와 땀으로 생명을 지킨 간호사들과 이름 없는 영웅들

병원과 도청의 최전선은 또 다른 전쟁터였습니다. 이곳에서도 이름 없는 여성들의 숭고한 희생이 잇따랐습니다.

 

최근 발간된 구술 증언집에 따르면, 광주기독병원과 전남대병원 등 시내 주요 병원의 간호사들은 밀려드는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잠시도 쉴 틈 없이 사투를 벌였습니다.

 

부족한 혈액을 채우기 위해 직접 헌혈에 동참하는 것은 물론, 총상 환자들을 돌보며 전쟁터 같은 상황을 견뎌냈습니다.

 

헌혈의 대열에는 직업과 나이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헌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진 17세 여고생 박금희 양의 사연은 많은 이들을 울렸습니다.

 

심지어 당시 '콜 박스'라 불리던 유흥업소 종사 여성들까지 자신들의 피를 나누기 위해 줄을 이었습니다.

 

또한, 악취가 진동하던 도청 지하실에서는 신원 미상 희생자들의 시신을 정성껏 닦아 염을 하고, 추모를 위한 수천 개의 검은 리본을 제작한 것도 모두 여성들의 몫이었습니다.

4. 보조자가 아닌 '조직의 중심', 송백회(松柏會)

여성들의 자발적 참여가 거대한 민중 항쟁으로 결집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진보적 여성 단체 **'송백회(松柏會)'**의 체계적인 조직 활동이 있었습니다.

 

구속자 가족과 지식인 여성들로 구성된 송백회는 5.18 초기부터 녹두서점과 YWCA를 거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들은 들불야학의 노동자들과 함께 대안 언론인 **'투사회보'**를 밤새 등사하여 시민들에게 배포하며 진실을 알렸습니다.

 

또한 현수막과 대자보를 제작하고 대규모 시민 궐기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흩어져 있던 시민과 시민군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은 결코 항쟁의 보조자가 아닌, 기획하고 조직하고 선동했던 중심 세력이었습니다.

마치며: 여성의 이름으로 다시 쓰는 5.18의 역사

1980 5월 광주의 여성들은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딸이기에 앞서 항쟁의 온전한 '주체'였습니다. 그들은 가두방송으로 시민을 결집시킨 선동가였고, 주먹밥과 헌혈로 생명을 나눈 연대의 주축이었으며, 거대한 궐기대회를 기획한 조직가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5.18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배제되고 소외되었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 주체적인 삶의 경험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제대로 기록하고 평가해야 할 때입니다. 광주가 만들어낸 위대한 민주주의와 평화, 그 눈부신 연대의 중심에 바로 이 여성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